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책 매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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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2014년 여름에 스터디하며 썼던 글 1
언젠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사이보그와 같이 신체 일부를 기기 장치로 대체한 경우 인간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대체한 경우에 인간이라 할 수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학생들은 심장을 기계로 바꾸면 인간이 아니다. 뇌를 바꾸면 안 된다. 99%까지 된다. 등 반문의 여지가 가득한 답변들을 내놓았고 이어지는 반문에는 혼란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사실 이 질문은 어린 학생들에게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 성인들에게도 여러 번 고심케 만드는 질문이다. 기술이 인간을 필요를 충족시키는 단계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휘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인간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모습과 조건이 있다. 첫 번째로는 신체조건이다. 다양한 얼굴, 다양한 피부색, 다양한 신체 조건들이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 두 번째로는 다른 동물과 달리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뇌를 갖고 있다.
기술들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되어왔고 첫 번째 조건 같은 경우에는 기능의 보완이 필요한 일부 사람들을 위해 안경, 의족, 의약품 등이 쓰여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인간의 조건이 변했는지 질문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의 정체성을 운운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이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보완 장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기계가 인간의 두 번째 조건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단순히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계의 출현 때문 만은 아니다. 계산기, 컴퓨터 역시 어디까지나 인간이 사용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보완 장치’에 불과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인간이 다른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지능적으로 기계를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에서 기계는 더 이상 ‘보완 장치’가 아닌 그 이상의 장치가 되었다.
투명사회를 쓴 저자 한병철은 앞으로 인간이 ‘프로그래밍 하는 자’와 ‘프로그래밍 당하는 자’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CCTV에 사용되는 카메라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 그 자체는 인간의 조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구석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CCTV의 주인들이 그 기술의 파급력을 위협삼아 어떤 규율을 강조하게 된다면 모두가 합의하는 인간의 도덕적 조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스마트 폰의 중독성 게임들이 인간의 심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지능적으로 계획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벗어날 수 없는 것, 사람들의 스마트폰 사용기록으로 이루어진 빅데이터로 하는 마케팅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유망한 분야이기 이전에 현대판 왕과 백성관계를 만들 수 있다. 거의 전 세계 사람들이 스마트폰이라는 기술의 이용자라고 할 때 지능적으로 프로그래밍하는 사람들에 의해 인간의 조건이 휘둘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예측당하고 통제될 수 있는 진영에 설 것이 아니라 예측하고 통제할 수 있는 진영에 서서 조금이라도 윤리적으로 인간의 조건을 뒤적거리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십 년 전에 쓴 글을 읽고 덧붙여 보는 생각, 매니악
몇 달 전, "매니악"이라는 책의 3부 "세돌 또는 인공지능의 망상"을 한 번 펼쳐보았다가 단숨에 읽게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푹 빠져 읽었을까, 이렇게 오랜만에 다음 장이 궁금해서 못 일어나는 일이 일어나다니 이유가 뭘까' 생각에 빠져들 정도였다.
나름 내린 결론 중 첫번째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논픽션이라는 장르는 인기 있을 만한 실화, 특히 영웅적 스토리를 잘 골라서 신화적 상상력을 더해 맛깔나게 쓴다면 베스트셀러가 되기 좋다는 계산적인 깨달음이었다.
두번째로 이 책의 3부에 대해서 들여다보면 알파고를 개발한 데미스 하사비스와 이세돌의 어린 시절부터 대국을 통한 만남까지 이어지는 내용이 두 인물 모두에게 공평한 분량으로 서술된다. 이 때 사람이라면 드는 마음, 사람을 응원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데미스 하사비스의 일대기보다는 이세돌의 어린 시절과 생각과 행동이 더 궁금하고 은근하게 편드는 마음이 들었다. 그게 이 책을 중간에 덮고 못 일어나게 만드는 힘이 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같은 한국인 중에 이런 멋진 사람이 있어서?'라고 생각해보았지만 그보다 사람이어서 그랬다는 생각이다.
그 마음 속에 책장을 넘기다 보니 이미 결말을 아는 일들임에도 그 당시 느낀 아쉬운 마음이 다시 재현되었다. 알파고가 바둑을 오염시키는 듯한 과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바라봐야 하는 '왜 바둑을 두는 알파고를 개발했냐'는 원망감이었다. 체스와 다른 바둑의 복잡성을 말하며 알파고가 이 대국에서 이기면 그 잠재력을 강하게 증명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바둑이라는 호수에 다시는 정화할 수 없는 약품을 뿌리고 간 것과 같다.
3부를 다 읽고 집에 가는 길에 이세돌씨의 근황을 찾아보았다.
알파고 이전의 바둑은 한 수 한 수 바둑 기사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수의 의미를 이야기 해보는 예술이었다면 이제는 한 수 놓을 때마다 옆에 승률 % 수치가 나타나는 다른 성격의 바둑이 되었다.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정확성만을 바라보며 개발하는 사람들이 이 분야, 저 분야에 정화할 수 없는 약품을 뿌린다. 그래도 나중에는 같은 분야 안에서도 사람이 한 것, 인공지능이 한 것으로 장르가 나뉘는 것으로 타협을 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도 이세돌씨는 다른 선택을 했다. 이제는 보드게임 작가가 되었다.
이세돌 / 전 바둑 기사 : 예전에는 이세돌 9단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이 수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뭐 이런 식으로 접근을 했는데 이제는 요거는 (승률)%가 좀 떨어지는데요.
예술성, 창의성, 혁신에 위협을 가하는 AI. AI 시대의 변화를 일찍이 체감한 이세돌 9단은 이제 세상은 다른 재능과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세돌 / 전 바둑 기사 : 지금은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을 해요. 바둑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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