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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중) 하라켄야, 내일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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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라켄야, 내일의 디자인  나의 인상, 발상   아이가 자는 틈새에 아시아식 리조트와 국립공원 부분을 읽었다. 하라켄야는 10여년 전에 디자인 잡지, 디자인 책에 푹 빠져 살 때, 나를 더욱 디자인에 푹 빠지게 만든 디자이너이다. 나름 가장 좋아하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왔는데 무엇보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아주 맑고 간결하다. 최근 이 사람의 신간 소식에 도서관을 갔다가 정작 다시 옛날 책을 다시 빌려와서 읽으며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 있다.   매력적인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다!   정보디자인 파트를 읽으며 특히나 내가 디자인을 좋아하고 선망하는 이유는 예술성에 더하여 효율, 기능을 겸비하는 꾀를 더하는 행위여서라는 것을 느낀다. 비록 젊은 시절의 꿈처럼 디자인을 하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욕심이 많이 떨어져 나간 나이가 되니 이런 멋진 생각을 읽고 내 삶에 구석구석 적용하며 삶을 영리하게 개선시켜나가는 것이 행복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데 십년 전보다 마음이 가볍고 여전히 들뜬다. 마치 발에 잘 맞는 가벼운 운동화를 신은 것 같네! 문장 한 가지  정보 디자인의 목표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다음에는 무엇을 해볼까   국립공원 발상지인 미국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미국 국립공원의 정보디자인은 상업주의와는 명확히 선을 긋고 질서정연하며 지적이고, 예술적이며 통일된 기법으로 누구나 이 디자인 방식을 배우고 습득해나가는 틀까지 만든 수준높은 선례를 가졌다고 말한다. 이를 이끈 사람이 뉴욕의 지하철 노선도를 만든 (그리고 우리나라 지하철 노선도가 영향을 받은) 마시모 비넬리라고 한다.   마시모 비넬리라는 이름을 검색만 해보아도 디자인 스타일과 정보전달을 하는 훌륭한 궁리에 감탄이 나왔다. 다음에는 이 사람 책을 꼭 읽어볼만하다.  

아름다운 책, "나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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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나는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를 읽고 있다.  에세이 책을 거의 읽지 않는데 펭귄이 선물해주었다. 선물 받으면 읽게 된다. 덕분에 아름다운 문장을 보고 있다.  이 에세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선물 받기 전부터 또렷하게 이름을 기억해둔 책이다. 물론 사서 읽을 생각은 없었으나 심리적 장벽이 무너지는 이유는 우리가 가족 여행으로 떠난 2009년 미국 여행 당시 메트로 폴리탄에서 경비원과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작가는 2008년에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이 되었다니 공감대가 깊어진다. 펭귄은 우리와 사진을 찍은 경비원이 주변 인물로라도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글을 속도 내어 읽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거대한 메트로 폴리탄 어디선가 사진을 찍고 있던 날, 이 작가도 어디선가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게 되었다'라는 작가의 말에서 느껴지듯 이 사람에게 가장 특별한 해였을 것이다.  --------------    미술관의 경비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묘사 는 심해를 원없이 탐험하는 물고기나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를 보는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이 가득든다.    암으로 투병하다 작별한 형에 대한 묘사 는 처절한 슬픔보다 차분하고 담담한 묘사가 돋보인다. 작가의 어머니가 말씀하신대로 '옛 거장들이 그렸던 그림'같다. 엄숙하고 따스한 빛 한줄기가 내리쬐는 명화같다.   내가 책을 읽는 속도는 매우 느리고 에세이를 좀처럼 안좋아하는 탓에 이 책의 문장이 다 신기하고 멋지다. 멈추고 포스트잇으로 표시하느라 가장 좋아하는 화가의 전시회에 간 사람처럼 머무는 시간이 길다.  --------------  글을 읽다가 옮겨보고 떠오른 생각도 적어보기  """몇 달 후, 우리는 필라델피아에 사는 어머니의 네 형제자매를 찾아갔다....

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책 매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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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인간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  2014년 여름에 스터디하며 썼던 글 1  언젠가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사이보그와 같이 신체 일부를 기기 장치로 대체한 경우 인간인지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대체한 경우에 인간이라 할 수 있는지 물은 적이 있다 . 학생들은 심장을 기계로 바꾸면 인간이 아니다 . 뇌를 바꾸면 안 된다 . 99% 까지 된다 . 등 반문의 여지가 가득한 답변들을 내놓았고 이어지는 반문에는 혼란스러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 사실 이 질문은 어린 학생들에게만 어려운 것은 아니다 . 성인들에게도 여러 번 고심케 만드는 질문이다 . 기술이 인간을 필요를 충족시키는 단계에서 그들의 정체성을 휘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인간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모습과 조건이 있다 . 첫 번째로는 신체조건이다 . 다양한 얼굴 , 다양한 피부색 , 다양한 신체 조건들이 공통점들을 갖고 있다 . 두 번째로는 다른 동물과 달리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있는 뇌를 갖고 있다 .  기술들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전되어왔고 첫 번째 조건 같은 경우에는 기능의 보완이 필요한 일부 사람들을 위해 안경 , 의족 , 의약품 등이 쓰여 왔다 . 그러나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인간의 조건이 변했는지 질문하지 않을 것이며 , 인간의 정체성을 운운하지도 않을 것이다 . 어디까지나 인간이 사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 보완 장치 ’ 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  인간의 조건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은 기계가 인간의 두 번째 조건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 물론 이는 단순히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계의 출현 때문 만은 아니다 . 계산기 , 컴퓨터 역시 어디까지나 인간이 사용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 보완 장치 ’ 에 불과해왔기 때문이다 . 그러나 다른 인간이 다른 인간을 통제하기 위해 지능적으로 기계를 프로그래밍하는 과정에서 기계는 더 이상 ‘ 보완 장치 ’ 가 아닌 그 이상의 장치가 되었다 .  투명...

밥보다 재즈 - Summertime, Autumn le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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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time 작곡 : 조지 거슈윈(1898 ~ 1937) 작사 : 듀보스 헤이워드(1885 ~ 1940), 아이라 거슈윈(1896 ~ 1983) (조지 거슈윈의 작품 중 하나인 Rapsody In Blue)  1935년 처음 '서머타임'이 연주된 이후, 역사상 가장 많이 녹음된 곡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서머타임 커넥션'이라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는 이 곡의 다양한 버전의 정보를 컴파일하여, 2011년 기준으로 최소 33,345개의 '서머타임' 녹음이 존재한다고 한다. 밥보다 재즈라는 책에서 말하길 녹음이 67500회 넘게 되었다고 기네스 기록이 있다고 한다.    Billy stewart의 Summertime이 제일 좋다. 원곡에 가까운?  WFMT (미국라디오방송국)의 칼럼 중에 "Summertime의 곡조나 가사가 조지 거슈윈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라는 도발적으로 시작하는 것이 잇다.  듀보스 헤이워드의 작사 역할이 컸다는 것, Summertime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가인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과 멜로디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Summertime이 단조이긴하지만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표절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아리랑처럼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d'은 많은 변형이 존재하는 듯하다. Summertime 역시 오페라에서 쓰인 클래식아리아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나중에는 수많은 재주 연주가들이 다양하게 연주했다.    Autumn leaves  Eddie Higgins trio의 버젼은 나에게 인터라켄 강물과 작은 집들로 기억에 남아있다. 첫 유럽 여행 때에 여러나라 중에서 스위스에 가서야 각자 아침 산책을 해보았다. 짧은 일정이라 30~40분이 주어졌다. 펭귄과 나는 서로 반대로 루프를 돌아 만났다. 20여 일의 여행...

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데이비드 무어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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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데이비드 무어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경험이 유전자에 새겨진다"는 표현은 저자의 연구 관점이자 주장이다.   나는 '발버둥쳐봐야 유전자 전달책이라는 본성에 지배 받는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 내 유전자의 한계 그 이상,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는 바람'에서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의 위안을 받으면서 내 바람에 대한 증거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책의 제목 다음에 있는 은유적인 시작. 이 책이 기존과 다른 관점, 질문을 던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1. 논지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 그 사람이 처한 상황, 맥락과 생물학적 분자들의 상호작용의 결과가 그 사람의 신체적 형질, 성격 등의 특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전적 요인과 상황적 요인이 모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두 요인 중 더 중요한 요인은 없다고 보는 것이 유용한 관점"   2. 'DNA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멋있는 문장의 챕터의 내용 (책의 제목과 더불어 목차 중 이 챕터 명을 보고 책을 대출했다. 책의 앞 부분을 읽는 와중에도 이 챕터에 어서 도달하기를 기다렸다.) :  이 챕터는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병 위험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결함 있는' 유전자 BRCA1이 있어서 양쪽 가슴을 수술로 제거한 것에 대한 사례로 시작한다. 나는 저자와 달리 '유전자가 결함이 있으면 제거 하는 게 최선이겠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저자는 후생유전학의 관점에서 이 결정에 대해 다른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이 당시 안젤리나 졸리가 뉴욕타임즈에 자신의 결정에 대해 글까지 발표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이런 행동이 일부 여성들에게 오해를 일으켜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유방 제거 수술의 유행을 ...

집중력 설계자, 제이미 크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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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미 크라이너가 쓴 "집중력 설계자"는 스마트 기기, SNS가 없던 시절에도 산만함에 대해 고민했던 수많은 수도자들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도자들이 어떻게 해야 산만함에서 벗어나서 종교의 뜻, 마음에 집중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역사의 기록들을 들려준다.    스마트 폰, 유튜브가 없던 옛날이라고 해서 산만함이 덜했던 것이 아니며 집중의 문제가 지금의 주변 환경, 경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에서 묘한 위안을 받는다.  수도자들에게 산만함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등으로 여겨졌기에 끊임없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집단적으로 구체적인 연구와 개발을 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 내려오는 집중을 위한 여러 방안들이 등장하게 된다.   수도자들이 집중을 위해 다양한 수도원 운영방식과 제도를 시도한 이야기는 산만함을 이겨내는 환경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해준다. 여러가지 방법들이 각각의 개성을 가진 수도자에 따라 유효했다. 절대적인 방법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들을 편파적으로 때로는 차별적으로 기록하였고 수도자는 꼭 외진 곳에 살면서 수련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산만함을 줄이기 위해 반복된 일과와 커뮤니티의 중요성도 등장한다. 공감되는 점이 많았다. 계속 새로운 일을 해보는 호기심은 사실 산만함과 가까울 수는 있다. 반복된 일과는 지루하지만 산만함을 덜어준다. 둘의 비율 구성을 야무지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만,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두 성실하게 목표를 추구하는 개인들이 모여 협동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공동체여야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러나 그러기가 쉽지 않아서 수도자들도 리더와 강제성있는 제도도 고안한듯하다. 오늘날 무제한의 방향과 가능성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자유와 익명성, 불필요한 연결로 사용자에게 즐거움과 피곤함을 함께 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

산이 좋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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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는 명서나 고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감이나 취향으로 골라 읽는 것 같다.  여행하는 모든 도시마다 사랑에 빠지지만 일단 아시아에서는 가장 사랑하는 도시인 타이베이. 타이베이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쓴 책이다. 도시 사람이라는 동질감과 함께 자신을 대만 사람 말고 타이베이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들수록 마치 화석이 조금씩 드러나듯 산을 사랑하는 취향이 매년 명확해진다. 그래서 이 사람은 산을 왜 좋아하나 궁금하다.  나는 언제나 에세이를 못읽는 사람으로 생각해왔는데 내가 에세이를 집으로 빌려올 정도로 도서관에서 이미 수차례 기웃거린 이 책이 에세이다. 에세이는 장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비슷한 사람을 찾아 공감하거나 조금 다른 구석을 발견하며 삶을 확장하는 맛에 읽는 것 같다.    산을 걷다.  낮은 산 중독자라고 하는 산뉘하이는 풀코스 마라톤 선수였던 사람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로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달리기 영혼이 사라졌다'는 표현에 공감하면서도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집 채 만한 슬픔에 깔리는 무력감이 두렵다. 노래도 춤도 아니고 걷기보다 조금 빠른 것마저 할 수 없었다는 마음을 알 것 같아 무섭다.   작가는 1년 동안 책에 파묻혀 지내다가 허환산을 오른 작가 아타이의 글과 사진을보고 직접 그곳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산에서 느리게 걷다보면 어쩔 수 없이 기억 속에 잠겨있던 사람들이 떠오르고 걷다가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면 선 채로 울 곤 했다고 한다. 사무치게 그리웠다고 말한다.        산이 가진 힘은 어제 다녀온 칼봉산 휴양림에서도 느꼈지만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얼핏 책의 뒷 장에서 보았지만 산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고 규칙적이기도 하다.   그 두 가지 만으로도 나는 벌써 산의 매력에 대해 정...

SF보다 vol1 얼음 중에서 남유하 '얼음을 씹다' / Novum (노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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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보다 vol1 얼음 중에서 남유하 '얼음을 씹다'  빙하기를 맞이한 사람들에 대해 떠올렸을 때 흔히 떠올리는 재난 스토리와는 다르다. 빙하기가  한참 지난 다음의 모습이다. 추운 빙하기에 대한 묘사가 섬세해서 더 시리다. 인육을 먹는 것이 불가피하게 관습이 되어버린 현실은 더 처참하고 모든 것이 얼고 바싹 말라버린 건조한 빙하기가 상상된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훑어보다가 이 단편의 마지막 부분, 자신의 아이의 손가락을 씹는 묘사에 충격을 받아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제대로 읽어보았다. 그래서 '얼음을 씹다'라는 제목이 달린 듯하고 징그럽지만 감각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얼음에 '씹는다'는 말을 붙인 것이 세련되게 느껴졌다.  이야기 속 비극적인 현실은 처음에 내용에 놀라고 그 뒤에는 슬프고 그럴 수도 있을까 갈등되게 만든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읽은 책 얘기를 늘 들려주는데 이 이야기는 들려주면 못 듣겠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안 읽으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내용을 읽어 나가다가 후반부의 싸우는 장면의 묘사는 내가 못보는 슬래셔 무비를 눈 안감고 보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았는데 그 영화도 색다른 점이 많다고 생각되었는데 '얼음을 씹다'는 더 극적이다. Novum (노붐)  이 책의 뒤에 소설만큼이나 재밌는 비평 파트에 나오는 Novum이라는 SF 요소가 흥미롭다. 나는 정보, 사실 위주의 책이 아니면 소설도 에세이도 잘 읽지 않았는데 우연히 친구의 추천으로 테드 창의 숨을 읽고 나서 그 이후에 Sfnal 시리즈를 읽고 켄 리우의 작품과 메타버스 문학상 시리즈 등을 읽으며 SF 소설 중에서 단편만을 재미붙여 읽게 되었다.  SF 소설에 대해 Sfnal이라고 부르려는 시도를 하는 분과 오늘 읽은 SF보다의 비평파트에서 Novum을 말한 사람 모두 SF 소설을 매우 사랑해서 이 장르에 대해 명확히 정리...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 "재해 수준의 야경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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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고 매력적인 문장,"재해 수준의 야경을 보고 싶다."  "사이하테 타히"라는 시인은 얼굴도 이름도 안 알리고 활동하는 일본 시인인데 독특한 시로 사이하테 타히라는 장르가 있다고 할 정도 란다.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집었다가 재밌는 구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순간 평범하고 의미없었던 한 마디가 의미있어진다는 구절이었는데 예전에 읽었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빗방울 하나도 조심하게 된다는 시가 떠올랐다.   나는 사랑, 외로움, 고독과 관련한 시를 좋아하지 않는데 신기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삶에 대한 조바심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늘어난다는 말은 강하게 공감된다. 내가 살면서 그렇게 변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구절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강력한 문장이 다른 시에 있었다. " 재해 수준의 야경을 보고 싶다. "   이 문장 때문에 시집을 훑어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나머지 뒤의 문장들과 전반적인 시의 내용이 개인적으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 문장은 정말 황당하고 좋다. (시들은 죽음이나 고독, 허무, 사랑이 주제가 많았는데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외로움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러한 주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가 조금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 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저런 구절들을 보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특히 이 사람은 매번 주제에 대해 황당한 문장을 갖고 바로 들이밀면서 시를 시작하는 듯하다. 시들이 저마다 첫 문장이 흥미로웠다.    누군가 주변 친구 중에 삶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가 있다면 이 사람의 시집 하나를 사서 주며 이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다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삶의 의욕이 샘솟을 것 같다.   자기 취향이 아니어도 이것저것 읽어볼 ...

미래 관찰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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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신간에 속해서 좋고 문장이 좋다. 아이디어라는 제목처럼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는 책같다. 나는 요즘 그런 책이 매우 필요하다  [84쪽] 소셜 미디어 상의 관계를 통해 단순히 더 잦은 연락, 생생한 영상, 좋은 음질의 통화가 관계의 진정성에 기여하는 바는 극히 한정적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주제 밖의 삶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숱한 마케팅에 익숙해진 생생함, 화질, 음질을 가져오는 우수한 기술이 내 삶을 진정 최고로 이끄는데 무관한 관계일 것이라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일정 수준의 만족을 위한 품질 기준만 넘어선다면 그다음부터는 종속에서 독립이 되는 관계들도 많을 것이다. 계속 흑백으로 사고하는 것을 경계한다면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중간에 있는 것도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도에 따라 중간에 가는 것도 있고 흑에서 백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진정성'이라는 가치는 좋아요 등으로 정량화할 수 없다. 관계의 진정성은 그 관계 속에 있는 대상자들만이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진정성 있는 관계가 인간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면, 사회적 통념보다 개인이 '체감하는 진정성'이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기술을 통해 인생의 만족감을 증진시키는 선택지로 해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