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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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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는 명서나 고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감이나 취향으로 골라 읽는 것 같다.  여행하는 모든 도시마다 사랑에 빠지지만 일단 아시아에서는 가장 사랑하는 도시인 타이베이. 타이베이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쓴 책이다. 도시 사람이라는 동질감과 함께 자신을 대만 사람 말고 타이베이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들수록 마치 화석이 조금씩 드러나듯 산을 사랑하는 취향이 매년 명확해진다. 그래서 이 사람은 산을 왜 좋아하나 궁금하다.  나는 언제나 에세이를 못읽는 사람으로 생각해왔는데 내가 에세이를 집으로 빌려올 정도로 도서관에서 이미 수차례 기웃거린 이 책이 에세이다. 에세이는 장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비슷한 사람을 찾아 공감하거나 조금 다른 구석을 발견하며 삶을 확장하는 맛에 읽는 것 같다.    산을 걷다.  낮은 산 중독자라고 하는 산뉘하이는 풀코스 마라톤 선수였던 사람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로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달리기 영혼이 사라졌다'는 표현에 공감하면서도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집 채 만한 슬픔에 깔리는 무력감이 두렵다. 노래도 춤도 아니고 걷기보다 조금 빠른 것마저 할 수 없었다는 마음을 알 것 같아 무섭다.   작가는 1년 동안 책에 파묻혀 지내다가 허환산을 오른 작가 아타이의 글과 사진을보고 직접 그곳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산에서 느리게 걷다보면 어쩔 수 없이 기억 속에 잠겨있던 사람들이 떠오르고 걷다가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면 선 채로 울 곤 했다고 한다. 사무치게 그리웠다고 말한다.        산이 가진 힘은 어제 다녀온 칼봉산 휴양림에서도 느꼈지만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얼핏 책의 뒷 장에서 보았지만 산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고 규칙적이기도 하다.   그 두 가지 만으로도 나는 벌써 산의 매력에 대해 정리가 끝나가는 것 같다.     

SF보다 vol1 얼음 중에서 남유하 '얼음을 씹다' / Novum (노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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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보다 vol1 얼음 중에서 남유하 '얼음을 씹다'  빙하기를 맞이한 사람들에 대해 떠올렸을 때 흔히 떠올리는 재난 스토리와는 다르다. 빙하기가  한참 지난 다음의 모습이다. 추운 빙하기에 대한 묘사가 섬세해서 더 시리다. 인육을 먹는 것이 불가피하게 관습이 되어버린 현실은 더 처참하고 모든 것이 얼고 바싹 말라버린 건조한 빙하기가 상상된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훑어보다가 이 단편의 마지막 부분, 자신의 아이의 손가락을 씹는 묘사에 충격을 받아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제대로 읽어보았다. 그래서 '얼음을 씹다'라는 제목이 달린 듯하고 징그럽지만 감각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얼음에 '씹는다'는 말을 붙인 것이 세련되게 느껴졌다.  이야기 속 비극적인 현실은 처음에 내용에 놀라고 그 뒤에는 슬프고 그럴 수도 있을까 갈등되게 만든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읽은 책 얘기를 늘 들려주는데 이 이야기는 들려주면 못 듣겠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안 읽으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내용을 읽어 나가다가 후반부의 싸우는 장면의 묘사는 내가 못보는 슬래셔 무비를 눈 안감고 보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았는데 그 영화도 색다른 점이 많다고 생각되었는데 '얼음을 씹다'는 더 극적이다. Novum (노붐)  이 책의 뒤에 소설만큼이나 재밌는 비평 파트에 나오는 Novum이라는 SF 요소가 흥미롭다. 나는 정보, 사실 위주의 책이 아니면 소설도 에세이도 잘 읽지 않았는데 우연히 친구의 추천으로 테드 창의 숨을 읽고 나서 그 이후에 Sfnal 시리즈를 읽고 켄 리우의 작품과 메타버스 문학상 시리즈 등을 읽으며 SF 소설 중에서 단편만을 재미붙여 읽게 되었다.  SF 소설에 대해 Sfnal이라고 부르려는 시도를 하는 분과 오늘 읽은 SF보다의 비평파트에서 Novum을 말한 사람 모두 SF 소설을 매우 사랑해서 이 장르에 대해 명확히 정리하려는

재해 수준의 야경을 보고 싶다.

 "사이하테 타히"라는 시인은 얼굴도 이름도 안 알리고 활동하는 일본 시인인데 독특한 시로 사이하테 타히라는 장르가 있다고 할 정도 란다.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집었다가 재밌는 구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순간 평범하고 의미없었던 한 마디가 의미있어진다는 구절이었는데 예전에 읽었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빗방울 하나도 조심하게 된다는 시가 떠올랐다.   나는 사랑, 외로움, 고독과 관련한 시를 좋아하지 않는데 신기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삶에 대한 조바심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늘어난다는 말은 강하게 공감된다. 내가 살면서 그렇게 변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구절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강력한 문장이 다른 시에 있었다. " 재해 수준의 야경을 보고 싶다. "   이 문장 때문에 시집을 훑어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나머지 뒤의 문장들과 전반적인 시의 내용이 개인적으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 문장은 정말 황당하고 좋다. (시들은 죽음이나 고독, 허무, 사랑이 주제가 많았는데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외로움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러한 주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가 조금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 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던데 저런 구절들을 보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특히 이 사람은 매번 주제에 대해 황당한 문장을 갖고 바로 들이밀면서 시를 시작하는 듯하다. 시들이 저마다 첫 문장이 흥미로웠다.    누군가 주변 친구 중에 삶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가 있다면 이 사람의 시집 하나를 사서 주며 이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안알려져 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삶의 의욕이 샘솟을 것 같다.   자기 취향이 아니어도 이것저것 읽어볼 일이다. 저런 문장도 만날 수 있으니.

수첩- 12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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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떠오른 생각 : 책을 읽는 대신 예술작품이나 영화로 사고 방식을 배울 수 있다. 썸네일 때문에 넷플릭스에 있을 법한 영화같다. 영화 요약 채널들에서 자극적인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를 소개하는 듯하다.

책 - 미래 관찰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책이 신간에 속해서 좋고 문장이 좋다.  아이디어라는 제목처럼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는 책같다. 나는 요즘 그런 책이 매우 필요하다  [84쪽] 소셜 미디어 상의 관계를 통해 단순히 더 잦은 연락, 생생한 영상, 좋은 음질의 통화가 관계의 진정성에 기여하는 바는 극히 한정적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주제 밖의 삶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숱한 마케팅에 익숙해진 생생함, 화질, 음질을 가져오는 우수한 기술이 내 삶을 진정 최고로 이끄는데 무관한 관계일 것이라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일정 수준의 만족을 위한 품질 기준만 넘어선다면 그다음부터는 종속에서 독립이 되는 관계들도 많을 것이다. 계속 흑백으로 사고하는 것을 경계한다면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중간에 있는 것도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도에 따라 중간에 가는 것도 있고 흑에서 백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진정성'이라는 가치는 좋아요 등으로 정량화할 수 없다. 관계의 진정성은 그 관계 속에 있는 대상자들만이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진정성 있는 관계가 인간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면, 사회적 통념보다 개인이 '체감하는 진정성'이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기술을 통해 인생의 만족감을 증진시키는 선택지로 해석할 수 있다.

책-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Arcaterture-Swiss Cat Ladders, Brigitte Schu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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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의 고양이 사다리  제목을 보고 알 것 같아서 꺼내 집었지만 사실 본 적이 없는 구조물이기도 했다. 고양이 사다리란 고양이 계단, 고양이 발판으로도 부른다고 한다. 고양이가 높은 곳에 오르도록 돕는 장치이다. 외출한 고양이들이 집에 돌아오도록(특히 공동주택의 경우 높은 층에 살 수도 있으므로) 해준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고양이 사다리는 집 안의 사다리랑 구분해서 "외출 고양이용 사다리"이다. 그리고 이 책을 옮긴이가 한 때 팬이었던 가수 김목인씨어서 반가웠다. 1. 김목인씨의 말대로 고양이 사다리만 가득 나오는데도 고양이를 많이 본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고양이 사다리만을 찍은 것이 아니라서 주변의 모습을 바라보는 재미와 건물의 정면 사진이 주는 아름다움은 개인적으로 취향에 맞았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말대로 중간에 아주 가끔 고양이가 보인다. (작가는 글에서 고양이 사다리를 오르는 고양이를 포착하기 어렵다며 이 책에 실린 사진이 그 현실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고양이를 찾는 기대감과 재미가 쏠쏠하다.  책은 논문과 닮은 구성이며 50쪽까지는 원서와 번역본이 병기되어있다가 그 이후에는 마치 부록을 단 형식으로 고양이 사다리 사진을 311쪽까지 실어두었다. 서문에서는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사진을 찍고 글을 쓴 것인가하였지만 뒤에 가면 고양이 사다리의 재료와 고양이의 특성에 대한 설명이 진지하다. 특히 재료와 구조물의 건축 방식은 학술적이다. 결론에서도 한 번 더 강조한다. 이 보고서가 단지 베른의 고양이 사다리 문화, 집사들의 관심이나 독창성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베른의 사회적 구조를 통찰하고 공공 공간, 건물, 사물, 주위 환경 등을 통찰하는 계기를 제시하려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고양이 사다리의 최신 경향 보고서가 아니라 이들의 다양한 구조와 시각적 특성, 그로 인해 생겨나는 분위기, 주변에 주는 영향을 보여주려고 했다고 한다. 몰랐는데 온라인에 고양이 사다리 사진이 이미 많다고 한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