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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데이비드 무어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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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어떻게 유전자에 새겨지는가, 데이비드 무어 (환경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유전체에 관한 행동 후성유전학의 놀라운 발견) "경험이 유전자에 새겨진다"는 표현은 저자의 연구 관점이자 주장이다.   나는 '발버둥쳐봐야 유전자 전달책이라는 본성에 지배 받는다는 말에 반박하고 싶은 마음, 내 유전자의 한계 그 이상,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는 바람'에서 그 문장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의 위안을 받으면서 내 바람에 대한 증거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책의 제목 다음에 있는 은유적인 시작. 이 책이 기존과 다른 관점, 질문을 던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1. 논지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 그 사람이 처한 상황, 맥락과 생물학적 분자들의 상호작용의 결과가 그 사람의 신체적 형질, 성격 등의 특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전적 요인과 상황적 요인이 모두 역할을 하고 있으며, 두 요인 중 더 중요한 요인은 없다고 보는 것이 유용한 관점"   2. 'DNA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멋있는 문장의 챕터의 내용 (책의 제목과 더불어 목차 중 이 챕터 명을 보고 책을 대출했다. 책의 앞 부분을 읽는 와중에도 이 챕터에 어서 도달하기를 기다렸다.) :  이 챕터는 안젤리나 졸리가 유방암과 난소암의 발병 위험을 급격히 증가시키는 '결함 있는' 유전자 BRCA1이 있어서 양쪽 가슴을 수술로 제거한 것에 대한 사례로 시작한다. 나는 저자와 달리 '유전자가 결함이 있으면 제거 하는 게 최선이겠구나'라고만 생각했다. 저자는 후생유전학의 관점에서 이 결정에 대해 다른 비판적인 시각이 있다.   이 당시 안젤리나 졸리가 뉴욕타임즈에 자신의 결정에 대해 글까지 발표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이런 행동이 일부 여성들에게 오해를 일으켜 의학적으로 '불필요한' 유방 제거 수술의 유행을 ...

집중력 설계자, 제이미 크라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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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이미 크라이너가 쓴 "집중력 설계자"는 스마트 기기, SNS가 없던 시절에도 산만함에 대해 고민했던 수많은 수도자들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도자들이 어떻게 해야 산만함에서 벗어나서 종교의 뜻, 마음에 집중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역사의 기록들을 들려준다.    스마트 폰, 유튜브가 없던 옛날이라고 해서 산만함이 덜했던 것이 아니며 집중의 문제가 지금의 주변 환경, 경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에서 묘한 위안을 받는다.  수도자들에게 산만함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는 것'등으로 여겨졌기에 끊임없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집단적으로 구체적인 연구와 개발을 했고 그 결과 지금까지 내려오는 집중을 위한 여러 방안들이 등장하게 된다.   수도자들이 집중을 위해 다양한 수도원 운영방식과 제도를 시도한 이야기는 산만함을 이겨내는 환경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말해준다. 여러가지 방법들이 각각의 개성을 가진 수도자에 따라 유효했다. 절대적인 방법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들을 편파적으로 때로는 차별적으로 기록하였고 수도자는 꼭 외진 곳에 살면서 수련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고 한다.   산만함을 줄이기 위해 반복된 일과와 커뮤니티의 중요성도 등장한다. 공감되는 점이 많았다. 계속 새로운 일을 해보는 호기심은 사실 산만함과 가까울 수는 있다. 반복된 일과는 지루하지만 산만함을 덜어준다. 둘의 비율 구성을 야무지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만, 커뮤니티의 중요성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모두 성실하게 목표를 추구하는 개인들이 모여 협동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는 공동체여야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러나 그러기가 쉽지 않아서 수도자들도 리더와 강제성있는 제도도 고안한듯하다. 오늘날 무제한의 방향과 가능성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자유와 익명성, 불필요한 연결로 사용자에게 즐거움과 피곤함을 함께 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

산이 좋아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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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세이는 명서나 고전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감이나 취향으로 골라 읽는 것 같다.  여행하는 모든 도시마다 사랑에 빠지지만 일단 아시아에서는 가장 사랑하는 도시인 타이베이. 타이베이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쓴 책이다. 도시 사람이라는 동질감과 함께 자신을 대만 사람 말고 타이베이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가 나이가 들수록 마치 화석이 조금씩 드러나듯 산을 사랑하는 취향이 매년 명확해진다. 그래서 이 사람은 산을 왜 좋아하나 궁금하다.  나는 언제나 에세이를 못읽는 사람으로 생각해왔는데 내가 에세이를 집으로 빌려올 정도로 도서관에서 이미 수차례 기웃거린 이 책이 에세이다. 에세이는 장르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비슷한 사람을 찾아 공감하거나 조금 다른 구석을 발견하며 삶을 확장하는 맛에 읽는 것 같다.    산을 걷다.  낮은 산 중독자라고 하는 산뉘하이는 풀코스 마라톤 선수였던 사람이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로 달리는 것을 멈추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달리기 영혼이 사라졌다'는 표현에 공감하면서도 누구나 겪어야 하는 집 채 만한 슬픔에 깔리는 무력감이 두렵다. 노래도 춤도 아니고 걷기보다 조금 빠른 것마저 할 수 없었다는 마음을 알 것 같아 무섭다.   작가는 1년 동안 책에 파묻혀 지내다가 허환산을 오른 작가 아타이의 글과 사진을보고 직접 그곳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산에서 느리게 걷다보면 어쩔 수 없이 기억 속에 잠겨있던 사람들이 떠오르고 걷다가 체력이 한계에 다다를 때면 선 채로 울 곤 했다고 한다. 사무치게 그리웠다고 말한다.        산이 가진 힘은 어제 다녀온 칼봉산 휴양림에서도 느꼈지만 시간을 느리게 가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얼핏 책의 뒷 장에서 보았지만 산은 하루의 시작과 끝이 명확하고 규칙적이기도 하다.   그 두 가지 만으로도 나는 벌써 산의 매력에 대해 정...

SF보다 vol1 얼음 중에서 남유하 '얼음을 씹다' / Novum (노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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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보다 vol1 얼음 중에서 남유하 '얼음을 씹다'  빙하기를 맞이한 사람들에 대해 떠올렸을 때 흔히 떠올리는 재난 스토리와는 다르다. 빙하기가  한참 지난 다음의 모습이다. 추운 빙하기에 대한 묘사가 섬세해서 더 시리다. 인육을 먹는 것이 불가피하게 관습이 되어버린 현실은 더 처참하고 모든 것이 얼고 바싹 말라버린 건조한 빙하기가 상상된다.  교보문고에서 책을 훑어보다가 이 단편의 마지막 부분, 자신의 아이의 손가락을 씹는 묘사에 충격을 받아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제대로 읽어보았다. 그래서 '얼음을 씹다'라는 제목이 달린 듯하고 징그럽지만 감각적인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얼음에 '씹는다'는 말을 붙인 것이 세련되게 느껴졌다.  이야기 속 비극적인 현실은 처음에 내용에 놀라고 그 뒤에는 슬프고 그럴 수도 있을까 갈등되게 만든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읽은 책 얘기를 늘 들려주는데 이 이야기는 들려주면 못 듣겠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안 읽으려고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의 내용을 읽어 나가다가 후반부의 싸우는 장면의 묘사는 내가 못보는 슬래셔 무비를 눈 안감고 보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았는데 그 영화도 색다른 점이 많다고 생각되었는데 '얼음을 씹다'는 더 극적이다. Novum (노붐)  이 책의 뒤에 소설만큼이나 재밌는 비평 파트에 나오는 Novum이라는 SF 요소가 흥미롭다. 나는 정보, 사실 위주의 책이 아니면 소설도 에세이도 잘 읽지 않았는데 우연히 친구의 추천으로 테드 창의 숨을 읽고 나서 그 이후에 Sfnal 시리즈를 읽고 켄 리우의 작품과 메타버스 문학상 시리즈 등을 읽으며 SF 소설 중에서 단편만을 재미붙여 읽게 되었다.  SF 소설에 대해 Sfnal이라고 부르려는 시도를 하는 분과 오늘 읽은 SF보다의 비평파트에서 Novum을 말한 사람 모두 SF 소설을 매우 사랑해서 이 장르에 대해 명확히 정리...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 "재해 수준의 야경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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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고 매력적인 문장,"재해 수준의 야경을 보고 싶다."  "사이하테 타히"라는 시인은 얼굴도 이름도 안 알리고 활동하는 일본 시인인데 독특한 시로 사이하테 타히라는 장르가 있다고 할 정도 란다.  "밤하늘은 언제나 가장 짙은 블루"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집었다가 재밌는 구절이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순간 평범하고 의미없었던 한 마디가 의미있어진다는 구절이었는데 예전에 읽었던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빗방울 하나도 조심하게 된다는 시가 떠올랐다.   나는 사랑, 외로움, 고독과 관련한 시를 좋아하지 않는데 신기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삶에 대한 조바심과 죽음에 대한 걱정이 늘어난다는 말은 강하게 공감된다. 내가 살면서 그렇게 변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구절이 정확히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강력한 문장이 다른 시에 있었다. " 재해 수준의 야경을 보고 싶다. "   이 문장 때문에 시집을 훑어보다가 의자에 앉았다. 나머지 뒤의 문장들과 전반적인 시의 내용이 개인적으로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 문장은 정말 황당하고 좋다. (시들은 죽음이나 고독, 허무, 사랑이 주제가 많았는데 내가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외로움을 잘 못 느끼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러한 주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가 조금 피곤하게 느껴졌다.)  이 사람 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저런 구절들을 보면 그럴 수 있겠구나 싶다. 특히 이 사람은 매번 주제에 대해 황당한 문장을 갖고 바로 들이밀면서 시를 시작하는 듯하다. 시들이 저마다 첫 문장이 흥미로웠다.    누군가 주변 친구 중에 삶에 지루함을 느끼고 있는 감수성이 풍부한 친구가 있다면 이 사람의 시집 하나를 사서 주며 이 사람의 얼굴도, 이름도 알려져 있지 않다고 있다고 이야기를 들려주면 삶의 의욕이 샘솟을 것 같다.   자기 취향이 아니어도 이것저것 읽어볼 ...

페타이어 감옥에 갇혀 서로 잡아먹는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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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떠오른 생각 : 책을 읽는 대신 예술 작품이나 영화로 사고 방식을 배울 수 있다. 23년 12월 25일  썸네일 때문에 넷플릭스에 있을 법한 영화같다. 영화 요약 채널들에서 자극적인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를 소개하는 듯하다.

미래 관찰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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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신간에 속해서 좋고 문장이 좋다. 아이디어라는 제목처럼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는 책같다. 나는 요즘 그런 책이 매우 필요하다  [84쪽] 소셜 미디어 상의 관계를 통해 단순히 더 잦은 연락, 생생한 영상, 좋은 음질의 통화가 관계의 진정성에 기여하는 바는 극히 한정적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주제 밖의 삶에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숱한 마케팅에 익숙해진 생생함, 화질, 음질을 가져오는 우수한 기술이 내 삶을 진정 최고로 이끄는데 무관한 관계일 것이라는 생각이 명확해졌다. 일정 수준의 만족을 위한 품질 기준만 넘어선다면 그다음부터는 종속에서 독립이 되는 관계들도 많을 것이다. 계속 흑백으로 사고하는 것을 경계한다면 좋을 것 같다. 처음부터 중간에 있는 것도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도에 따라 중간에 가는 것도 있고 흑에서 백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진정성'이라는 가치는 좋아요 등으로 정량화할 수 없다. 관계의 진정성은 그 관계 속에 있는 대상자들만이 체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진정성 있는 관계가 인간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면, 사회적 통념보다 개인이 '체감하는 진정성'이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기술을 통해 인생의 만족감을 증진시키는 선택지로 해석할 수 있다.